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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영화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 대한 이야기

 

 

헐리우드 영화에서 80년대와 90년대 영화계의 빛나는 스타였으며 로키 발보아와 람보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하여 영원히 대중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액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유명해지기 전의 삶이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액션 영화등을 찍을때 뼈가 부러지면서도 대역을 쓰지 않고 연기를 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스탤론은 어릴적에 몹시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는 5살때부터 뉴욕 맨하튼의 빈민가에서 살았는데 가정불화로 인하여 매일 다투는 부모님을 보면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태어날 당시 어려움을 겪으면서 안면 신경이 마비되였었는데, 그로 인하여 그의 미소는 약간 "무시하는 느낌의 미소"로 되였으며 말도 불분명하게 하게 되어 주위로 부터 오해를 사 따돌림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 영향때문인지 자신의 어릴적 꿈은 히어로가 되는것이라고 하였는데요. 어릴적에 학교 교복밑에 슈퍼 히어로 복장을 하고 몰래 학교에 들어가서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쇄골이 부러진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청년기에는 거리에서 이발사로 일하거나 중앙 동물원등에서 청소부로 일했다고 하네요.

실버스터 스탤론은 포르노 영화인 'The Party at Kitty and Stud's' 이 자신의 첫 출연작 이었는데요. 

후에 그는 당시 아파트에서 쫓겨나 버스 정거장에서 자던 찰나 였던지라 자포자기 형식으로 포르노를 찍었다고 밝혔습니다.

 

 

모든것을 다 잃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하는 애완견을 25불에 팔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개를 배불리 먹여줄 돈이 없었어서 개를 눈물 속에 떠나보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렇게 애완견과 헤어진 이주일 후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와의 권투경기를 본 스탤론은 록키의 시나리오를 쓸 결심을 하게 됩니다.

첫 시나리오는 3일동안에 완성하였으며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해야된다는 조건을 내세워 많은 협상끝에  3만5천불을 받고 영화에 출연할 수도 있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보디빌딩이 필요했던 그는 돈이 없어 열악한 환경에서 몸을 만들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낡은 차들을 밀어서 옮기던가 콘크리트 블럭들을 운반하면서 힘을 키웠다고 하네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된 '록키' 는 1976년 첫선을 보였으며 록키 발보아 역을 맡았아서 흥행에 대성공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최우수 남우상, 최우수 오리지널 스크린 플레이 상등 10개의 아카데미 어워드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으며 그 중 최우수 작품상 ,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편집상을 획득하였습니다.

 

 

 

 

록키를 촬영하면서 스탤론이 필라델피아 미술 박물관 입구앞에서 출연하는 신이 있었습니다. 그후 1982년 스탤론은 필라델피아 도시에 록키의 동상을 헌납하였으며 그것은 지금 박물관 앞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서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차기작 들인 '록키2', '록키3', '록키 4', '록키5', '록키 발보아' 그리고 '크리드' 등 후속작이 연이어 나올 수 있게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 미국 육군 특수부대 출신 베트남 참전 용사를 캐릭터로 한 람보 시리즈와 저지드레드, 클리프 행어 등을 연이어 히트 시키게 됩니다.

 

 

 

 

그의 인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2016년 그가 수상한 골든 글로브상인데 영화 '크리드'에서 펼친 연기로 하여 베스트 조연상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어느 한 토크쇼에서 스탤론 자신은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80년대와 90년대의 자신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2010년 역대 유명한 권투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권투발전을 위한 토론을 진행하는 국제 권투유명인모임(International Boxing Hall of Fame) 에 초대 받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도 이스케이프 플랜, 익스펜더블 등에 출연하면서 왕성한 연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